김시나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사무국장)

 

지난 3월 통계청이 발표한 고용동향 자료를 살펴보면, 청년층(15~29세) 실업률은 10.7%로 가장 높았던 1999년 7월(11.5%) 이후 최근 다시 높아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올해 3월 기준 우리나라의 청년층 인구는 949만 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29,000명이 감소했다. 그러나 청년층 실업자 수는 455,000명으로 오히려 전년 동월 대비 43,000명이나 늘어났다. 그런데 이런 통계 수치보다는 주위에서 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청년들을 직접 보면 이런 현실이 훨씬 더 분명해진다.

 

청년들에게 해탈(解脫)과 포기(抛棄)를 강요하는 사회

 

청년을 상징하는 단어는 우리에게 익숙한 ‘88만원 세대’나 20대의 태반은 백수라는 뜻의 ‘이태백’ 그리고 연애, 결혼, 출산 등 3가지를 포기한 ‘삼포세대’에서 결혼, 취업, 연예, 집, 친구까지 5가지를 포기한 세대인 ‘오포세대’까지 발전했다. 최근에는 ‘인구론’(인문대 졸업생 90%가 논다), ‘청년실신’(청년실업자+신용불량자)까지 생겨났다. 이 모두가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의 불안정한 모습을 비유한 단어들이다.

 

예전에는 당연하다고 여겨졌던 “학업을 마치고 취직하고, 연애를 해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가정을 이루는 삶”이 지금의 20~30대 청년들에게는 꿈꾸는 것조차 포기할 수밖에 없는 어려운 일, 또는 ‘불가능한’ 일이 되고 있다. 최악의 청년 취업난과 경제 불황이 계속된다면 청년세대가 포기하는 것들은 앞으로 더 많아질 것이 분명하다. 얼마 전 한 신문에 실렸던 <달관세대가 사는 법>이라는 글이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신문에 소개된 인물은 서울에 사는 27세의 청년이었다. 주인공은 서울의 한 명문대를 졸업하고 금융기관에서 6개월짜리 인턴으로 일했다. 인턴 급여로 한 달에 100만 원을 벌어 월세 25만 원, 저축 20만 원을 뺀 55만 원으로 생활한다. 신문에서 그를 달관세대로 소개한 이유는 100만 원이라는 적은 수입에도 불구하고 돈 안 들이고 취미와 여가를 즐기며 사는 방법을 알고 스스로가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그는 극장에 갈 돈이 없어서 직접 영화관에는 못 가지만 인터넷으로 영화를 다운 받아서 보고, 노트북으로 무료 게임을 하면서 여가 시간을 보낸다. 석 달에 한번쯤 저가 브랜드의 옷을 구매하여 입고, 여자 친구와는 패스트푸드나 길거리 음식을 이용하여 값싼 데이트를 즐긴다. 당연히 결혼할 계획이나 아이를 출산할 계획 같은 것은 없다. 아예 꿈도 꾸지 않는다.

 

해당 기사에서 소개된 달관세대는 정규직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는 것을 넘어 조그맣게 남은 미련조차도 과감하게 버리고 비정규직이라도 좋으니 월급만 또박 또박 나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승진하기 보다는 일이 적은 부서로 가고 싶어 하며, 월급이 적어도 적게 쓰면서 주어진 조건에서 자신의 생활을 즐기는 사람들로 지칭된다. 즉, 사회적 과정이나 의무는 개의치 않고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젊은 세대를 칭하는 용어가 “달관세대”라는 것이다.

 

‘88만원 세대’나 ‘이태백’은 그래도 문제를 직시하려는 의지와 함께 말도 안 되는 현실에 대한 분노를 담고 있지만, 달관세대라는 규정은 그야말로 아무런 희망도 분노도, 그리고 개선의 의지도 없는 세대가 되고 있다는 뜻이다. 청년들이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미래가 없다는 것과 같은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경제사회적 약자인 우리나라 청년들의 현실

 

청년들의 노동은 그동안 ‘아르바이트’라는 이름으로 최저임금도 지켜지지 않는 법과 규제의 사각지대에서 착취당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열정페이”는 ‘열정’과 ‘급여(pay)’를 합친 말이다. 젊었을 땐 열정 하나만 있으면 된다며 구직자들의 꿈과 희망을 담보로 턱없이 낮은 임금을 주고 노동력을 착취하는 것이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 우리나라의 고용 관행이었다.

 

“인턴사원”이라는 것은 본래의 뜻과 달리 소정의 기간이 끝나도 취업이 된다는 보장도 없이 민간기업, 공공기관 가릴 것 없이 취업의 절벽에 선 청년들의 절박한 처지를 교묘히 이용하는 또 다른 관행화된 노동착취의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아르바이트나 인턴사원 신분의 청년들이 임금에 대해 정당한 요구를 하면 “애사심이 없다”거나 “나이도 어린 것이 돈만 밝히는 것”으로 취급되었다.

 

노동력의 공급은 많고 좋은 일자리는 적어서 취업 자체가 어렵다 보니 젊은 시절의 상당 기간 동안을 열악한 조건에서 일하는 게 당연하게 여겨지게 되었다. 이런 상황 때문에 심지어는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분들조차 자신의 사업체에서 취업 준비생들을 “열정페이”로 고용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었다. “너 아니어도 일할 사람은 많다”는 논리가 고용주나 근로자 모두에게 먹혔기 때문이다. 인턴/수습/견습/실습이란 이름으로 관행화된 청년노동 착취는 지금도 다양한 방법으로 계속되고 있다.

 

기성세대들이 싼 값에 청년 노동력의 고용을 즐기는 동안 “달관세대”는 스스로 자신들의 미래에 대한 파업을 시작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혼인신고는 305,507건으로 전년에 비해 17,300건이나 줄었다. 인구 1,000명당 혼인건수를 나타내는 조혼인율은 6건으로 관련 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1970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실제로 통계청의 사회조사에서도 결혼을 꼭 해야 한다는 비율이 1998년 73.5%에서 2014년에는 무려 56.8%로 줄었다. 이로 인해 합계출산율은 1.19에 불과했다. 1971년도의 출생아가 1,024,800명이었던 데 비해 지난해는 436,500명으로 60% 이상 감소했다.

 

청년들이 소비할 수 있는 돈이 없다는 것도 우리 경제에는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예전에는 아무리 경기가 어려워도 대학가의 상가들은 그리 크게 영향을 받지 않았었다. 그러나 요즘은 강남의 학부모가 50% 이상인 특정 대학이나 고액의 과외비용을 벌 수 있는 일부 대학교 앞의 특정 상가를 제외하면 경기불황이 전체 대학가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이 일상화되고 있다. 청년들의 소비감소는 단순히 대학가 일원에 한정되는 문제를 넘어서 내수경제를 위축시키는 중요한 요인이 되면서 전체적으로 우리나라 경제가 어려워지는 과정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역동적 복지국가 정책으로 청년 일자리 문제 해결해야

 

청년들에게는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일자리가 있어야 한다. 청년들이 결혼도 하고 출산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우리 사회를 지속시킬 원동력이며, 우리 미래의 지속가능성을 약속하는 보증수표가 될 수 있다. 그 해답은 바로 역동적 복지국가에 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보편적이고 적극적인 복지국가 정책을 시행할 것을 촉구하고자 한다.

 

첫째. 청년들을 위한 ‘질 좋은 일자리’가 늘어나야 한다. 정규직과 다름없는 일을 하지만 고용불안, 저임금, 차별대우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청년 일자리로는 내수 진작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청년 시기에 비정규직으로 일을 시작할 경우 평생 비정규직 일자리에 머물 확률이 매우 높다. 통계청의 ‘2014 비정규직 통계’를 보면, 2004년 정규직의 65%였던 비정규직의 월평균 정규직 대비 상대임금은 2014년도에는 55.8%로 떨어졌다. 청년들을 살리고 내수경제를 살리고자 한다면, 정부가 먼저 나서서 비정규직의 규모를 줄이고 정규직과 비정규직간 노동조건의 격차를 해소해야 한다.

 

둘째, 최저임금을 인상하고 근로감독을 강화해야 한다. 최저임금제는 저임금 노동자에게 공정한 임금을 보장함으로써 임금불평등을 완화하고 소득분배를 개선한다. 이는 사회적 약자인 청년들에게 꼭 필요한 제도이다. 우리나라는 노동소득분배율이 하락하고 임금불평등이 커지고 있다. 이는 구매력의 약화와 내수시장의 위축을 초래한다. 이로 인해 기업들은 정규직 일자리를 만들 여력이 없고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그러므로 최저임금을 인상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우리나라 경제를 활성화하는 좋은 방법이다.

 

셋째, 복지국가 정책으로 공공부문의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 “우리나라 청년들을 모두 중동으로 보내서 국내에서 청년들을 찾아볼 수 없도록 하자”는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이 온갖 패러디를 통해 청년들로부터 조롱의 대상이 된 적이 있었다. 기존의 패러다임에서는 청년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는 게 쉽지 않다. 그래서 나온 고육지책이 바로 문제가 된 박 대통령의 발언이다. 사실, 외환위기 이후 역대 정부들이 꾸준히 청년 일자리 정책을 쏟아냈음에도 청년실업률은 오히려 더 높아졌다. 그러므로 이제는 접근방식을 바꾸어야 한다. 

 

경제가 성장하고 기술이 발전하면 일정 시점부터는 노동력에 대한 수요가 줄어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유럽 선진복지국가들은 단순히 사회정책이 아니라 경제정책으로서 ‘복지국가 정책’을 적극 추진했다. 산업구조의 고도화와 국제적인 분업의 확대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줄어드는 고용을 대체하고 노동자들에게 적정 임금을 지불하는 일자리를 제공하여 내수를 활성화시키기 위해서, 또 임금으로 받은 돈을 교육이나 노후보장 등을 위해 저축할 필요 없이 모두 소비할 수 있도록 ‘복지국가 정책’을 제도적으로 시행해 온 것이다.

 

기업들에게 아무리 강압적으로 요구해도 돈벌이가 보장되지 않는 한 정부의 요구만으로 투자를 더 늘릴 수는 없고, 불필요한 고용을 늘리도록 강제할 수도 없다. 그것은 기업의 합리적 경제활동을 막는 반시장적인 정책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장 합리적인 방안은 국가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변화된 시장의 상황을 보완하여 경제를 더 활성화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전체 고용의 겨우 5% 정도만을 공공부문이 창출하고 있다. 주요 OECD 국가들이 대개 전체 고용의 20-30%를 공공부문이 담당하는 데 비하면 지나치게 낮다. 그것은 역대 정부들이 경제의 규모에 맞추어 적극적으로 사회서비스를 개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확실한 방안은 우선 정부가 나서서 다양한 공공부문에서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안전과 관련된 소방과 치안분야 뿐만 아니라 보육, 교육, 의료, 노인 돌봄을 포함한 다양한 사회서비스가 여기에 해당한다.

 

지금이야말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적극 나서서 ‘복지국가 정책’을 시행할 때이며, 이는 가장 확실한 청년실업 대책이다. 청년 일자리 문제의 해결은 청년 개개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미래가 달린 문제이다. 지금 우리사회가 이 문제를 구조적으로 해결해내지 못한다면, 그래서 구조적 개혁의 최후 시기마저 놓쳐버린다면 미래 세대인 청년들이 먼저 현재를 포기하게 될 것이며, 이는 동시에 우리 모두의 미래마저 저절로 포기하는 결과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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